젊은이 -체스와프 미워시 (Czeslaw Milos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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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체스와프 미워시 (Czeslaw Milosz)



불행하고 어리석은 젊은이여

도회의 한 구역에서 방금 돌아온 젊은이여

안개 서린 전차 창문으로 비치는,

군중의 비참하고 불안한 모습들

사치스런 장소에 들어갈 때마다 밀려드는 두려움

모든게 너무 비싸기만 하다, 너무 고급스럽다,

자네의 미숙한 매너와 유행에 뒤진 옷, 그리고 서투른 행동을

사람들은 다 알아봤을 테지.


자네 곁에서 서서 이렇게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당신은 잘생긴 청년이군요,

당신은 건장하고 튼튼해보입니다,

당신이 불행하다니 믿기지 않는군요.


낙타 털 외투를 걸친 테너 가수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지

자네가 그의 마음속 두려움을 알고 그가 어떻게 죽을지 안다면


자네의 근심거리인 빨간 머리 여인,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는 마치 불 속의 인형처럼 보이고

그녀가 익살꾼들의 놀림에 깔깔대는 것을 자네는 이해하지 못할 테지.


자네를 떨게 하는 저택

눈 부신 아파트

바로 이곳에서 기중기가 잡석을 치웠다네.


자네 차례가 오면 자네도 무언가를 소유하고 지키고

아무런 이유가 없을지라도 자부심을 느끼겠지.


소원은 이루어질 테고, 그러면 자네는

연기와 안개로 짜여진 시간의 정수를 갈망할테지.


변치 않는 바다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단 하루에 불과한 무지개빛 인생.


자네가 읽은 책이 무슨 소용이겠나

답을 찾았지만 해답없는 인생을 살았을 뿐.



자네는 남쪽 도시의 거리를 걷게 될 거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황홀하게 바라보겠지

간밤에 내린 첫눈이 쌓인 하얀 정원을.

2010/04/05 01:07 2010/04/05 01:07

논리와 신화

[일상과 유희]
백악관에서 가장 잘 알려진 문화적 특징 중 하나는 예스맨들이 배출되어 나온다는 점이다. 카터가 어떤
반대에 동의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해군에서의 경험이나 소규모 사업을 참모없이 성공적
으로 운영하면서 얻은 카터의 경험은, 사람들에게 반대를 높이 평가하도록 가르쳐주는 성질의 것은 아
니었다. 그의 종교 역시 그러하다.

 대부분의 경우 교훈을 주는 성서조차도 건전한 행정에는 암울한 안내서가 될 수 있다. 장(長)
은 언제나 옳고, 참모는 언제나 그른 것이다. 반대자로서의 아랫사람이란 아무 쓸모가 없다. 안드레아
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큰 무리를 먹이는 것은 부족하다고 말한다. 베드로는 믿음만 가지고
물 위를 걸어갈 수 있을까를 위심한다. 반대자들은 '믿음이 적은 자'인 셈이다. 그 주인인 예수는 결코
틀릴 수가 없다.

(Charles peters, "Blind Ambition in the White House" in The Washington Monthly, March 1977)



제임스 카니, 리처드 쉬어의 '논리학 입문' [간디서원]의 예문이다. 동의하는 핵심 부분을 볼드처리했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 행정을 맡는 것은 위험하다. 위의 예문에 명시되었듯이 논리의 문제가 믿음
의 문제로 치환되면 하급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경직된 관료 시스템은 시
간이 지날 수록 더욱 더 비효율적으로 변하고 결국 하급자 대부분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

현대의 행정에서 장(長)이 모세와 같은 선지자, 지도자 노릇을 하고자 하는 것은 민주정 시스템을 붕괴
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노릇은 헛된 희망과 논리의 부재를 초래한다. 헛된 희망을 지탱하는 것은 미래
이다. 가까운, 혹은 먼 미래의 환상을 자아내고 결국에는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끊임없이 홍보한다.

논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희망을 위해 조작된 신화에 대한 믿음이 남는다. 믿음은 곧 보스에 대한 충실
도와 같다. 결국 경직된 관료 시스템에 있어서 '예스맨'이란 보스의 말을 잘 듣는 개이다.

신화는 반대자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널리 퍼진 신화는 대중들로 하여금
논리를 망각하게 한다. 행정의 장(長)에게 논리가 부재하는 경우 감정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국가의 이익'과 '애국심'이란 단어가 동원되며 현 정부를 믿어줄 것을 호소한다. 하지만 어떠한 자료도
근거도 없다. 신화는 논리도 근거도 없기 떄문에 신화이다.
   
정책과 실적이 아닌 희망과 조작된 신화를 보는 유권자가 대다수인 이상,앞으로도 국가 행정의 스페셜리
스트가 아닌, 카리스마있는 해결사 이미지를 가진 자가 당선되는 일이 지속될 것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의미의 예스맨이 비판자보다 각광받는 시대가 계쏙될 것이다.

메시아가 유권자들 에게 보여주는 것은 실적이 아닌 신화이며, 유권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비판이 아닌
믿음이다.  

우리가 너무 나이브했다. 지난 정권 때 방송에 대해서 못 박아두었어야한다. 그러한 기회는 다시 오기 힘들
다. 위의 예문에 전형적으로 부합하는 정권이 MB정권이라고 본다. 홍보를 통해 신화를 쌓지만 정작 실적은
없다.

'믿음이 적은 불쌍한 자들이여. 아직은 때가 오지 않았다.' 경제 메시아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결코 그 때
는 도래하지 않는다. 신화는 결국 거짓말이고 나중에는 더 큰 거짓말이 필요하다. 행정의 장(長)은 결코 메시
아가 될 수 없다.  

2010/03/15 00:09 2010/03/1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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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Clapton - Layla

[노래하는 집시]


설연휴 친척집에서 할일이 없어 침대에 누워 라디오를 들었다.

배철수씨가 가장 인상적인 기타리프로 사랑 받는 곡이라면서 소개해줬다.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의 부인의 아명이 layla인데

에릭 클랩튼이 레일라를 위해 만든 곡이라고 한다.

레일라가 조지 해리슨과 이혼 후 결혼했으나 다시 이별하게 됐다고 들었다.

아무튼 연휴 끝나면 찾아서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이렇게 다시 들어본다.

왜 가장 인상적인 기타리프 1위를 차지했는지 알 수 있다.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기타리프
2010/02/16 22:52 2010/02/16 22:52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Russell - What I Have Lived For

[러셀의 세계]


사용자 삽입 이미지
The three passions, simple but overwhelmingly strong, have governed my life: the longing for love, the search for knowledge, and unbearable pity for the suffering of mankind. These passions, like great winds, have blown me hither and thither, in a wayward course, over a deep ocean of anguish, reaching to the very verge of despair.

I have sought love, first, because it brings ecstasy-ecstasy so great that I would often have sacrificed all the rest of life for a few hours of this joy. I have sought it, next, because it relieves loneliness-that terrible loneliness in which one shivering consciousness looks over the rim of the world into the cold unfathomable lifeless abyss. I have sought it, finally, because in the union of love I have seen, in a mystic miniature, the prefiguring vision of the heaven that saints and poets have imagined. This is what I sought, and though it might seem too good for human life, this is what -at last- I have found.

With equal passion I have knowledge. I have wished to understand the hearts of men. I have wished to know why the stars shine. And I have tried to apprehend the Pythagorean power by which number holds sway above the flux. A little of this, but not much, I have achieved.

Love and knowledge, so far as they were possible, led upward toward the heavens. But always pity brought me back to earth. Echoes of cries of pain reverberate in my heart. Children in famine, victims tortured by oppressors, helpless old people a hated burden to their sons, and the whole world of loneliness, poverty, and pain make a mockery of what human life should be. I long to alleviate the evil, but I cannot, and I too suffer.

This has been my life. I have found it worth living, and would gladly live it again if the chance were offered me.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오,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나는 사랑을 찾아 헤메었다.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
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여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 종종 생각한다. 두번째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
-이 세상 언저리에서, 저 깊고 깊은 차가운 무생명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몸서리치도록 만드는 그 지독한
외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온 천국의 모습이 사랑의 결합 속에 있
음을, 그것도 신비롭게 축소된 형태로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추구한 것이며, 비
록 인간의 삶에서 찾기엔 너무 훌륭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쨋거나 나는 결국 그것을 찾아냈다.
 내가 똑같은 열정으로 추구한 또 하나는 지식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엇다. 하늘의 별이
왜 반짝이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유전 너머에서 수數들이 힘을 발휘한다고 설파한 피타고라
스를 이해해보고자 했다. 그리하여 나는 많지는 않으나 약간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
 사랑과 지식은 나름대로의 범위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주었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날 지상으로 되
돌아오게 했다. 고통스러운 절규의 메아리들이 내 가슴을 울렸다. 굶주리는 아이들, 압제자에게 핍박받는
희생자들, 자식에게 미운 짐이 되어버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과 궁핍과 고통 가득한 이 세계 전
체가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 할 바를 미웃고 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나 역시
고통받고 있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
2010/01/28 20:55 2010/01/2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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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대화

[길 떠나는 보헤미안]
- 우리는 두 사람 다 잘 알고 있는 일들을 서툴게 아무렇게나 상대방에게

일깨우려는 짓 따위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대화는

방해를 받고 오해만 일으키고 말 것이다. 우리는 단순하게 선의에서

혹은 거의 호의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대했다.

물론, 로렌초도 나도 이 좋은 의도와 계획을 지닌 대화가

서로의 기억에 남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 비가 내릴 것 같지도 않는 하늘 아래서 우리의 아침 대화는

 그저 대화 그 자체를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유희이고, 하나의 오락이고,

결과를 문제 삼지 않는 순수하게 미적인 행위였다. -


- 헤르만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 中 -




만약 당신과 제가 어느 거리에서 만나게 된다면 무엇부터찾게 될까요?
북적거리는 거리 번쩍이는 네온사인, 사람들의 행렬 속을 따라 흘러가다가 인심좋아보이는 아주머니의
인사가 인상적인 어느 밥집에 가서 밥을 먹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어느 유명한 까페에 갈지도
모르죠. 저는 근황을 털어놓거나 세상사에 대해서 얘기하거나 어쩌면 당황한나머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
어 놓을 것입니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거리를 나오면 우리는 새로운 유희거리를 찾으러 거리에 나설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유희, 술, 노래, 춤 어떤 것이라도 찾아서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아마
도요. 아. 그러고보니 우리는 서로 무얼 좋아하는지도 묻지를 않았군요.

헤세가 말하는 즐거운 대화라는 것은 유희, 오락으로서의 대화라고 합니다. 헌담, 불평, 걱정을 제외한
주제를 가지고 유쾌한 자극과 영감을 리듬감있게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유희
일 것입니다. 사실 무엇을 하더라도 혼자노는 것보다 함께 노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만치 즐겁거든요.
사교의 가장 기본이자 가장 어려운 것이 대화입니다. 즐거운 대화는 어떤 유희보다도 즐겁고 어떤 유희
보다도 어렵습니다.

만약 헌담,불평,걱정을 제외한 주제를 가지고 몇시간이 지나도록 질리지 않는 즐거운 대화를 함께할
친구가 곁에 있다면 당신은 세상에서 보기드문 행운을 손에 거머쥔 것입니다.

2010/01/28 19:42 2010/01/28 19:42